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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이민 일기장

나의 미국 커뮤니티 컬리지 졸업식

by my immigration diaries 2023. 5.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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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sclaimer; 제 블로그의 글들은 저의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경험담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정확한 정보를 원하시는 분은 블로그 글보다는 공식 홈페이지를 참고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2019년부터 다녔던 커뮤니티 컬리지를 드디어 졸업할 수 있게 되었다. 원래는 2년 과정이지만 나는 휴학과 복학을 많이 해서 졸업까지 4년이 걸렸다. 처음에는 비자 때문에 입학하게 되었는데, 학교를 다니면서 전공도 찾게 되었고 좋은 교수님들도 많이 만났다. 그러면서 직접 미국 학교를 체험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입학 초반만 해도 서른 중반에 커뮤니티 컬리지를 다니는게 특별한 체험이라 생각했지만, 사실 학교를 다니면서 다양한 나이대의 사람들을 만났다. 과마다 차이가 크겠지만, 우리 과에서는 4년제를 졸업하고 일을 하다가 다시 학교로 돌아온 사람들이 대부분이었고, 커리어 체인지를 위한 도전을 하는 미국 사람들을 보면서 이 나라에서 교육이 얼마나 열려있는지 실감했었다. 또한 일을 하면서 학교를 다니고, 육아를 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본받을 점도 많았다. 최고령으로 80세가 넘으신 할머니부터 10대에 싱글맘이 되어 아기를 안고 학교에 다녔던 학생들까지, 다양한 인종과 나이대와 경험을 가진 사람들을 만난 시간들이었다.


한국은 입학연도로 학번을 말하지만 미국에서는 졸업을 언제 하느냐로 얘기를 해서 나는 class of 2023 이 되었다. 한국에서 대학과 대학원을 다니면서 졸업식은 2월에 항상 있었고, 졸업 가운은 당일 대여 후 반납을 했다. 그런데 국제대학원 졸업식때 보니 외국학생들은 졸업 가운을 입고 졸업 사진을 직접 사진관에서 찍는 문화가 있어서 특별히 졸업 가운을 며칠 대여해 가기도 하는 걸 보았던 터라 해외 학생들의 졸업식은 어떻게 하는 건가 궁금하기도 했다. 미국에서의 졸업식을 겪어보니 그 문화에 대해 이제야 이해가 갔다.

 

미국에서의 학기는 5월에 끝나기 때문에 졸업식도 5월에 치뤄졌다. 졸업을 할 학생들은 미리 학교 웹사이트를 통해 졸업 신청을 해야 했고, 학교 bookstore에서 미리 졸업가운을 구매해야 했다. 한국처럼 대여 후 반납하는 게 아니라 직접 본인의 졸업 가운을 사는 것이다. 구매는 약 한 달 전부터 할 수 있었다.

 

나는 마지막 학기에 온라인 수업만 들어서 학교에 나갈 일이 없었는데, 오래간만에 졸업 가운 구매를 위해 학교에 다녀왔다. 우리 학교는 캠퍼스가 여러개 있는데, 내가 갔던 캠퍼스에 하필 내 사이즈의 졸업 가운이 없어서 북스토어 알바생이 다른 캠퍼스에 전화를 걸어 그곳으로 픽업을 가야 했다. 이렇게 해서 졸지에 졸업 가운 구매를 핑계로 두 개의 캠퍼스를 방문했다. 오래간만에 가보는 것이기도 했고, 괜히 졸업을 한다고 하니까 새삼 후련 섭섭한 기분이 들었다.


졸업 가운과 모자를 사왔는데, 모자는 본인 소유이기 때문에 꾸밀 수 있다. 나는 물론 꾸미지 않았지만, 졸업식에 가보니 많은 아이들이 모자를 재미있게 장식해 온 것을 볼 수 있었다. 모자 외에도 졸업 가운에 스톨 (stole)과 코드 (cord), 그리고 메달도 걸친다. 스톨과 코드, 메달은 학교에 다니면서 성취한 것을 나타내는데, 본인이 직접 제작한 스톨을 메고 온 학생들도 많았다. 나는 성적 우수 클럽에 들어갔는데 거기서 스톨을 보내줬다. 학교에서도 관련 코드를 보내줘서 스톨과 코드를 메고 갔다. 졸업식 당일에 메달도 수여해서 스톨 하나, 코드 하나, 메달 하나 이렇게 가운을 장식할 수 있었다.


졸업식 당일이 되어 남편과 아레나에 도착했다. 입장은 6시부터 시작하고, 식은 7시부터 진행된다고 하였다. 6시쯤 도착했었는데 벌써부터 많은 인원이 주차장에 있었고 경찰들도 많이 와서 행사 진행을 돕고 있었다. 식을 보러 온 가족들과 졸업을 하는 사람들은 아레나 입구부터 다른 통로로 가서 식이 끝날 때까지 서로 만날 수 없다고 했다. 남편에게 인사를 하고 나는 졸업자들이 모인 공간으로 이동하고, 남편은 먼저 행사가 열리는 곳으로 이동했다.

졸업자들이 모인 공간으로 이동하니 자신의 네임택을 수령하는 공간부터 메달 수령하는곳, 인터뷰하고 사진 찍는 곳, 알럼나이 등록하는 곳, 이름 발음 확인하는 곳 등 각종 부스들이 많았다. 나는 내 네임택을 수령하고 나서 내 이름이 한국이름이라 발음이 어렵기 때문에 이름 발음 확인하는 부스로 향했다.

 

미국은 다민족 국가이다 보니까 나처럼 외국 이름을 가진 학생들이 많고, 이 때문에 이름 발음을 확인하는 부스가 있는 것이다. 부스에는 오늘 이름을 호명하는 교수님들이 계셨는데, 두 분께 내 이름을 알려드리고 발음을 교정시켜 드렸다. 내 이름 스펠링과는 다르게 그분들이 부르기 쉽게 본인들이 알아볼 수 있도록 네임카드에 이름을 적고 계속 연습을 했다. ㅎㅎ 한 50번은 넘게 내 이름을 정확히 발음하도록 연습을 시켜드렸다. ㅎㅎ 미국인에게는 어려운 한국 이름이다.

 

그 후에 거울이 쭉 있는 곳으로 가서 옷매무새를 다듬고 자리에 앉아 기다렸다.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져 옆에 앉은 아이랑 말을 하게 됐는데 그 아이는 코드가 4개나 있어서 뭔가 활동을 많이 한 듯 보였다. 물어보니 성적 우수랑 transfer student, 클럽 등의 코드라고 한다. 몇 개는 받은 것이고 몇 개는 직접 구매했다고 한다. 내가 너무 나이가 많은 탓인지, 미국 아이들이 본인의 성취에 맞춰 코드를 여러 개 산 것이 재미있기도 하면서 졸업식에 한 번 쓰고 마는 것에 큰돈을 들이는 게 신기하기도 하고 했다. 그래도 자신이 성취한 것에 큰 의미를 부여하고 그 순간을 기념하는 것이 개인의 발전에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이 들기도 해서 괜히 옆에 앉은 아이가 기특해 보이기도 했다.


긴 시간을 기다려 학생들이 드디어 본 식장으로 입장하기 시작했다. 굉장히 큰 경기장에 가득 들어찬 사람들을 보면서 단지 커뮤니티 컬리지 졸업이지만, 각자의 인생에서 이뤄낸 값진 성취를 축하해주기 위해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는 게 대단하기도 하고 영광스럽기도 했다. 누군가에게는 커뮤니티 컬리지 졸업이 하찮은 학위라고 할 수도 있지만, 어떤 이에게는 이렇게 크게 축하할만한 뜻깊은 자리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사람이 너무 많아서 처음엔 남편도 내가 어디에 있는지, 나도 남편이 어디에 있는지 몰라서 한참을 두리번거렸다. 나중에 카톡이 와서 자리를 얘기해줘서 서로 겨우 찾을 수 있었다. 먼저 미국 애국가인 The Star-Spangled Banner를 부르고 두 명의 졸업 대표가 각각 졸업 연설을 했다. 첫번째 학생은 10대에 출산해서 싱글 틴 맘으로 학위를 시작한 학생이었다. 그동안 아이 때문에도 그렇고, 남자친구한테 가정폭력을 당하기도 하면서 학업을 오랜 시간 못 마쳤지만, 계속 포기하지 않고 학교를 다녀서 4년 만에 졸업을 한다고 했다. 학교에서 도움도 많이 받고, 클럽 회장도 하면서 본인을 성장시켜 나갔다는 이야기가 감동적이었다. 두 번째 학생은 40대인데 커뮤니티 컬리지에서 새로운 커리어를 시작했다고 한다. 본인이 어떻게 학교 생활을 모범적으로 할 수 있었는지 좋은 이야기를 많이 해 주었다. 두 학생 모두 Non-traditional students 로써 각자의 인생에서 겪었던 이야기를 통해 학교에서의 시간들이 얼마나 뜻깊었는지 잘 풀어낸 좋은 연설이었다.

 

그 후 이제 학생들이 한명씩 단상에 올라가 총장과 악수하고 졸업장을 받는 세리머니를 했다. 나는 뒤쪽에 앉았더니 거의 마지막 순번에 가깝게 받아야 했다. 7시에 시작한 행사가 길어져 내가 졸업장을 받을 때에는 이미 9시 반이 넘은 시각이었다. ㅎㅎ 오랜 시간 앉아있다 보니 옆자리 아이와 친해져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이름이나 연락처는 모르지만, 나중에 셀카도 같이 찍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수다 떨 사람이 옆에 앉아 길고 지루한 시간을 잘 보낼 수 있었다. 거의 10시가 다 되어서 식이 다 끝나지는 않았지만, 졸업장을 받아 강당을 빠져나왔다. 이미 미리 졸업장을 받은 대다수의 사람들이 집에 간 뒤였고, 아직도 많은 인파가 밖에서 사진을 찍으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나와 남편은 너무 배고파서 얼른 레스토랑으로 자리를 옮겼다.


남편이 졸업 축하한다며 꽃다발을 건넸다. 좋은 것 주고싶다고 마트 꽃이 아니라 꽃집에 가서 직접 골랐다고 한다. 향이 진해서 며칠째 집에 꽃내음이 가득하다. 꽃은 언젠가 시들어 버려야 하니 그전에 사진을 여러 장 찍어두었다. ㅎㅎ

 

처음 입학했을때만 해도 커뮤니티 컬리지라 설렁설렁 다닐 줄 알았는데, 하다 보니 욕심도 나고 해서 나름 열심히 다녔다. 한국에서 공부하던 것과 다른 새로운 전공도 찾고 인턴도 해보고 장학금도 타고 여러 가지 즐거운 경험을 해주게 도와준 학교에서 만났던 인연들에게 감사함을 느낀다. 앞으로의 내 미국생활에 또 어떤 도전이 기다리고 있을지 설레고 많은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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