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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올해도 7월에 접어들었다. 시간이 조금 천천히 가주기를 바랬는데 나의 바람과는 다르게 시간은 계속 앞으로 흘러간다. 생각 나는 대로 의식의 흐름을 따라 올 해 상반기 정리를 해보려고 한다.
벌써 7월이 되어 이민 온지 만으로 4년을 꽉 채웠다. 햇수로는 5년이지만 미국에 온 후 모든 것을 만으로 하게 됐다. 일단 생일 같은 경우에는 나는 가을이 생일이기 때문에 한 해의 대부분을 한국 나이보다 2년이나 줄여서 다닐 수 있으니 좋다. 숫자가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또 그 무게감이 있기 때문에 두 살이 줄어든다는 건 나름 혼자만 느끼는 부담감을 조금이나마 더는 느낌이 들었다.
또, 미국에 얼마나 살았냐는 물음에도 나는 되도록이면 만으로 이야기를 해왔다. 6월 까지는 3년 몇 개월 이었기 때문에 항상 3년 정도라고 말할 수 있었는데 이제는 어쩔 수 없이 4년이라고 이야기를 해야 한다. 이렇게 숫자를 줄였던 데는 또 혼자만 느끼는 무게감 때문이었는데, 이렇게 된 나만의 계기가 있었다.
내가 여기 온지 1년 반 정도 됐을 무렵 만난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는 난민 자격으로 미국으로 이민을 온 친구였는데 내가 1년 반 정도 살았을 때 이미 이곳에서 3년을 지낸 친구였다. 그 당시 내 생각에 3년은 엄청나게 오래된 선배의 느낌으로 다가왔고, 그렇기에 나는 그 친구가 이미 모든 생활 면에서 미국에서 정착을 했을 것이라고 지레 짐작을 해 버렸다. 그렇지만 시간이 지나고 서로를 좀 더 알아가고, 우정을 쌓아가며 알게 된 것은 그건 나의 착각이었다는 것이다. 3년차였던 그 친구는 경제적 상황이나 언어 및 문화 등 많은 부분에서 아직 이 나라에 오롯이 정착하지는 못했었다. 시간이 지나며 처음에 1년차가 봤을 때 3년차의 대 선배의 느낌이 점차 사라지고, 나도 그 친구가 겪었던 단계들을 차곡차곡 지나갔다.
초창기의 나는 나의 좁았던 시야로 그 친구를 판단하려고 했었던 것 같다. 뭐 모든 사람 사는게 그렇듯 어떤 것이든 본인이 겪어보고 고생을 해 봐야 피부로 와닿듯이 결국 나도 그랬다. 3년을 내리 살아보고 나서야 뒤를 돌아보니 그때는 그랬고, 저때는 저랬구나 하고 알게 되었던 것이다.
아무튼 그래서 이러저러한 생각들을 하고 나니 다른 사람들에게 미국에 얼마나 살았냐는 질문에도 그냥 정말 딱 살았던 기간만, 혹은 그 보다도 기간을 줄여 말하게 되었던 것 같다. 은연중에 "제가 여기서 그렇게 모든 걸 다 완벽하게 정착할 만큼 오래 살지 않았어요. 단지 3년인걸요." 라고 말하고 싶었던 것 같다.
이제부터는 "제가 여기서 그렇게 모든 걸 다 완벽하게 정착할 만큼 오래 살지 않았어요. 단지 4년인걸요." 라는 무언의 호소를 하며 다녀야 할지, 혹은 만 4년이라는 말에 "제가 4년을 살았는데 이정도면 짧다고 하긴 좀 애매하고 그렇다고 또 완벽히 정착할 만큼 오래된 시간은 아니지만 또 그래도 웬만한건 알아서 할 수 있는 그냥 그 정도 산 것 같아요." 라는 말을 함축하고 다녀야 할지 모르겠다. 😂ㅎㅎ
그래도 조금 변화를 느낀 것이 있다면 어느 순간부터 한국에 대한 최신 소식이 내가 알던 것과 다르다는 것을 느꼈던 순간들이 많아졌다는 점이다.
한국에서는 유행이 시시각각 변하기 때문에 그에 따라서 먹어보지 못한 음식들도 늘어만 갔다. 마라탕은 아직까지 유튜브로만 본게 전부였는데 친구들이 말하길 이미 그건 오래전에 유행이 지나갔단다. 중국 당면, 분모자 당면 이런 것도 구경도 못해봤다. 또 로제 떡볶이도 정말 먹어보고 싶었다. 배떡, 응떡 이런 브랜드도 다 유튜버들이 올려주는 비디오로만 본 게 전부인데, 이번에 한국에 다녀온 친구들 말로는 이미 그것도 다 유행이 지나간거라나 뭐라나.
또 코로나 여파로 인해서 그런건지, 유행의 변화로 그런건지, 내가 예전에 갔던 음식점들이 많이 없어졌다. 이것도 한국에 매 년 나갔다 오는 친구들에게 들은 소식들이다. 또 엄마 말로는 우리 동네에 많은 아파트 들이 재건축을 해서 새로 지어졌기 때문에 내가 알던 우리 동네의 모습도 많이 바뀌었다고 한다. 아파트 이름들도 다 최신식으로 바뀌고, 주변 부대시설들도 새로 지어져버려서 내가 알던 아파트들은 다 과거의 기억속에만 남은 모습으로 이제 자취를 감추었다.
패션 유행도 너무 빨리 변해버린 것 같다. 예전에 미국에서 수입하던 의류, 가방 등 패션 브랜드들도 요즘에 한국에서는 한 물 간 유행이 되어버린게 많은 것 같다. 그리고 해외 직구 이런것들도 너무 잘 되어있어서 따로 여기서 뭘 사들고 한국에 가서 선물을 한다는 것 자체가 의미가 많이 사라진 것 같다. 오히려 인터넷 최저가로 사는게 더 싸고 배송도 빠르고 좋은 것 같다. 오히려 유행을 모르고 옛날 생각만 하고 이곳에서 바리바리 선물로 사가는 것이 민폐가 된다는 얘기도 더러 들어서 선물을 한다면 굉장히 신중하게 골라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번 가을학기부터 남편은 박사과정 5년차에 접어들게 된다. 각오는 하고 왔지만 박사 과정은 정말 너무나도 길고 고통스러운 과정이다. Ph.D. 가 있는 사람들만 보면 저절로 고개가 숙여지고 존경심이 든다. 나는 가족으로써 고통을 같이 나눈다고 하지만 사실 근본적인 것은 남편 혼자 짊어지고 가는 짐이다. 산모가 아기를 출산할 때 남편은 그저 옆에서 지켜보며 응원해 줄 수 밖에 없는 것처럼, 나도 남편의 고통을 간접적으로 느끼고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에 도움을 줄 뿐이지만, 결국 그걸 해 나가는 것은 본인 혼자서 밖에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박사 과정 배우자를 둔 분들에게도 많은 존경심이 든다. 프로그램마다 다르겠지만 박사 펀딩이라는게 궁극적으로 공부를 하는 개인의 생활만 책임져주는 정도이지 가족을 부양할 만큼의 금액을 주지는 않는다. 그리고 남편이 있는 프로그램에서는 고학년이 되면 펀딩 금액도 줄어든다. 우리 위의 수 많은 박사 과정을 밟은 분들과 그 배우자 분들이 존경스러워지는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길게는 10년이 넘는 시간까지 걸리는 박사 과정에서 경제적으로 어려움에 처하면서도 공부와 가정을 일구는 일은 정말 가까이 들여다보면 말을 잇지 못할 정도의 힘듦이 축약된 나날들이다. 어떻게 다들 이 과정을 묵묵히 견디면서 연구를 하고 가계부를 쓰고 결국에 그 긴 터널을 지나서 교수가 되셨는지 놀라울 따름이다.
주제를 바꿔, 주변에 아무래도 박사 과정에 있는 사람들이 많다 보니 나는 그들을 보며 지레 겁을 먹고 박사 과정에 도전하지 않았다. 내가 석사 학위를 받았을 때만 해도 남편이 박사를 시작하고 나도 얼마 있다가 박사 과정에 들어가려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주변의 많은 박사생들, 포닥분들, 교수님들을 보고 나는 알았다. 세상에는 내가 할 수 없는 일들이 아주 많겠지만 그 중에 박사 학위도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ㅎㅎ
아무튼 그렇다고 공부의 끈을 아직 놓을 용기는 없어서 나름의 목표를 세우고 도전을 하는 중인데, 조금 더 큰 각오가 필요하다고 느낀다. 남편도 나에게 이렇게 나약하게 공부하면 나중에 후회하고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고 항상 나를 채찍질 하는 중이다. 아직도 정착하지 못하고 떠다니는 삶에서 불만을 갖기 보다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고싶은 공부를 할 수 있는 여건이 주어진 것에 항상 감사하고 겸손하고 노력하는 자세로 하루하루 보내야겠다는 생각이 자주 드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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