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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0월 13일, 마라톤 당일이 되었다.
그 전날에 오마하에서부터 새벽 비행기를 타고 와서 시카고에서도 이곳저곳 돌아다니느라 피곤해서 일찍 잠들었다.
긴장 반 설렘 반으로 아침 네시 반정도에 잠이 깼던 것 같다.
남편이 속한 코랄은 마지막 3차 웨이브 출발이라 (8시 이후) 너무 일찍 나갈 필요는 없었지만,
처음이라 뭐가 뭔지 잘 모르는 우리는 긴장된 마음으로 아침 시간을 보냈다.
시카고에서 만난 많은 러너들은 아침으로 사과를 먹거나, 베이글 혹은 다른 종류의 빵을 먹는 듯했다.
한식을 선호하는 남편은 아침에 빵이 안 들어갈 것 같다고 해서 근처 H마트에서 사 온 전복죽을 먹었다.
호텔에서 전자레인지로 전복죽을 데우는데 이미 출발을 하는 몇몇 러너들을 마주쳤다.
잠시 우리가 묵었던 숙소를 얘기하자면 마라톤이 열리는 곳과 근접한 "크라운 플라자 시카고 웨스트 루프" 호텔에 묵었다. 자발적으로 이곳을 찾은 것은 아니고, 시카고 마라톤에서 러너들을 위해서 몇몇 호텔들과 계약을 체결해 두는데, 그중에서 이곳을 선택해서 예약했다.
https://maps.app.goo.gl/3aEHWHN4uGkmUkQJ6
마라톤 기간에는 시카고 루프 안의 호텔 값이 워낙 고공행진을 하기 때문에, 이렇게 시카고 마라톤에서 지정하는 호텔을 예약하는 게 그나마 경비를 절감할 수 있는 방법인 것 같다. 물론 상대적으로 저렴한 루프 바깥의 호텔들을 예약할 수도 있지만, 우리는 마라톤이 열리는 곳에서 가까운 곳에 숙소를 얻고 싶어 이런 방식을 선택했다.
마라톤이 열리는 그랜트 파크까지도 가깝고, 한국인이라면 중요한 H마트가 걸어서 8분밖에 걸리지 않기도 하고, 게다가 호텔 바로 앞에 24시간 하는 월그린이 있어서 유용하다.
우리는 전복죽을 먹고, 기어를 챙겨서 호텔을 나섰다.
행사 당일에는 많은 도로가 통제되므로 많은 경우 지하철을 타야 하는데, 우리는 블루라인을 타고 이동했다.
마라톤이 열리는 곳까지 걸어가면서 수많은 인파들을 만났다.
세계 여러 나라에서 온 5만 2천 명의 참가자들과 그들을 응원하러 온 사람들로 도로가 가득 찼다.
이제 남편은 출발선으로, 나는 시카고 어딘가로 떠나 남편을 응원하러 가야 한다.
언제나 붙어 있다가 따로 떨어져서 각자의 맡은 일을 해야 한다니, 두렵기도 하고 걱정도 됐다.
남편은 코랄 N에 속했다.
워낙 많은 참가자들이 있었기에 그들을 전부 출발시키는 것도 꽤나 많은 시간이 걸렸다.
첫 번째 코랄이 뛴 이후로 남편의 레이스가 시작될 때까지 약 한 시간 반 정도가 걸렸다.
남편을 보내고 나서 나는 어디로 가야 할지 막막했다.
그래도 마라톤에서 만나기로 한 분이 있어서, 막연하게 그분이 계신 곳으로 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시카고 지리를 잘 모르기도 하고, 지하철 노선도도 전혀 몰라서 구글맵에 의존해서 어찌어찌 브라운 노선을 타고 시카고 윗동네로 향했다.
다행히 내가 만나기로 한 분이 마라톤 전문가 셔서 그분께 많은 가르침을 받았다.
어디에서 남편을 응원하면 좋은지 루트를 다 짜 주셨고,
이동 방법도 자세하게 알려주셔서 구세주를 만난 기분이었다.
시카고 마라톤에서 응원을 할 때 가장 중요한 건 spectator 모드로 시카고 마라톤 앱을 활용하는 것이다.
내가 지정해 놓은 참가자가 어디쯤인지 5K를 기준으로 bib을 찍어서 대략적으로 그 사람이 어디에 있는지 알려준다.
그래서 나는 그 페이스를 따라서 남편이 지나가지 않은 길목에 미리 도착해서 매의 눈으로 남편을 찾아 응원을 하면 된다.
그리고 나에게 많은 도움을 주신 분이 미리 아이폰에 있는 가족위치공유 설정을 활용하라는 말을 해주셔서
나는 남편의 아이폰 위치 공유를 내 휴대폰에 켜두고 시카고 마라톤 어플과 함께 활용해서 남편의 정확한 위치정보를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이러한 노력 덕분에 남편이 뛰기 시작하고 약 1시간이 지난 시점에서 첫 만남을 할 수 있었다.
미리 챙겨 온 응원도구를 힘차게 흔들면서 남편을 기다리고 있는데, 저 멀리서 기진맥진하면서 뛰어오는 남편을 보았다.
크게 이름을 불러서 남편이 나를 발견했고, 짧은 순간 응원을 했다. 뛰고 있는 남편을 보니 눈물이 흘러서 혼이 났다.
얼른 눈물을 훔치고 다음 응원장소로 이동했다.
이제 응원하는 방법을 알았기에, 구글맵으로 내가 가려는 위치가 남편의 페이스로 그곳에 도착하기 이전에 내가 갈 수 있는지 확인을 하고 부리나케 시카고 전역을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도로 통제 때문에 아마도 버스를 타기는 어려울 것 같아 모든 이동을 도보와 지하철로만 이동했다.
남편이 짐 보관소를 이용하지 않았기 때문에 내가 모든 짐을 다 들고 이동해야 해서 쉽지만은 않았다.
시카고 마라톤은 굳이 마라톤을 뛰지 않아도 도심의 사람들이 응원에 많은 참여를 한다. 26.2마일이라는 긴 거리를 사람들이 줄지어 응원한다는 자체가 뛰는 사람들에게 얼마나 많은 에너지를 전달해 줄지 상상이 어려울 정도였다.
도로를 따라 여러 가지 공연도 많았다. 춤을 추거나, 음악을 연주하거나, 집 앞을 뛰는 사람들을 응원하는 사람들을 보며
나도 덩달아 즐거웠다. 재미있는 응원 사인을 구경하거나, 주인을 따라 함께 응원 나온 강아지들을 구경하는 재미가 굉장했다. 어마어마한 인파들이 내뿜는 행복하고 즐겁고 밝은 에너지가 전해져서 마음이 뭉클했다.
드디어 하프 지점이다. 나는 미리 하프지점에 도착해서 남편을 기다렸다.
디제이가 신나는 음악을 틀어주고, 많은 응원군단들이 이곳에서 자신이 응원하는 사람이 오기를 기다렸다.
하프지점 이전에는 북쪽으로 쭉 올라갔다가 내려오는 코스였고, 하프지점 이후에는 차이나타운이 있는 남쪽으로 내려가는 코스가 펼쳐진다.
하프에 도달했을 때 이미 많은 거리를 뛰었기 때문에 남편은 많이 지쳐있었다. 그래도 걷지 않고 느리지만 꾸준히 달려가는 남편을 보았다.
앞으로의 하프는 더더욱 힘들 텐데 안쓰럽기도 하고 걱정이 되기도 했다. 그래서 남편에게 이제 그만해도 되고 언제든 힘들면 알려달라는 얘기를 하고 우리는 또 헤어지게 되었다.
후반부 하프는 차이나타운 쪽에 위치해 있어서 레드라인과 그린라인 두 개로 이동할 수 있었다. 나는 그린라인을 타고 이동해서 도보로 걸어가 차이나타운에 자리를 잡았다. 시작한 지 5시간이 지났을 무렵이라 아주 많은 사람들이 지쳐가는 게 눈에 보였다. 30K를 달린 상태기 때문에 한계에 다다른 사람들이 정신력으로 앞으로 나아간다는 생각을 했다.
남편은 맨 뒷 웨이브였기도 하고, 페이스가 빠르지 않은 사람들이 모인 코랄이다 보니 남편을 비롯해서 많은 사람들이 걸어서 이동을 하고 있었다. 그래도 주저앉거나 포기하는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다시 한번 혼자 펜스를 잡고 가져간 사인을 흔들며 응원을 했다.
나는 혼자서 응원을 해야 했기에 가족단위, 혹은 친구단위로 응원을 온 사람들이 많이 부러웠다.
전 세계 각지에서 사람들이 왔기에 다양한 나라들의 국기도 볼 수 있었다.
한국사람들도 간간이 보였는데 그럴 때 더 크게 소리를 지르며 응원을 했다.
마지막 구간에 접어들기 직전 부근으로 응원을 갔다. 이쯤 되니 사람들이 정말 정신이 혼미해지는 게 보였다. 많은 사람들이 걷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 많은 사람들이 레이스를 마쳐갔기 때문에 자원봉사자들이 대강의 정리를 하고 있었다. 도로가 한산했고, 펜스도 사라져 있었다. 나는 거리로 가서 남편과 짧은 거리를 함께 걸으며 응원을 해줬다.
오후가 돼서 날씨가 많이 추워졌고, 바람도 거셌다. 땀을 흘리고 말리는 과정이 반복된 남편은 거센 바람에 강하게 추위를 느끼고 있었다. 나는 준비해 간 점퍼를 건넸고, 남편은 옷을 입어 추위를 견디며 다시 조금씩 나아갔다. 나는 남편에게 이제는 피니시 라인에서 기다리겠다고 얘기한 뒤 먼저 피니시 라인이 있는 루스벨트 역으로 향했다.
그곳에 가니 미리 경주를 끝낸 사람들과 응원하는 사람들이 모여 끝까지 완주하는 사람들을 힘차게 응원하고 있었다. 이미 마라톤이 시작한 지 6시간이 지난 이후였기 때문에 절반 이상의 사람들이 달리기를 마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인의 경기를 끝내고 다시 목이 터져라 응원을 나온 사람들을 보면서 큰 감동을 받았다.
티셔츠에 이름을 써둔 사람들을 보면서 한 명 한 명 이름을 부르며 응원하는 사람들을 보며 나도 같이 마지막까지 응원을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막판 스퍼트를 내며 달려오는 남편을 보았다. 남편은 옷에 이름을 써두지 않았기에 나만 큰소리로 남편의 이름을 불렀다. 피니시라인에는 참가자만 들어갈 수 있어서 나는 남편이 그곳에 들어가는 것을 보고 나도 남편을 만날 수 있는 곳까지 뛰어서 이동했다. 다행히 남편보다 먼저 도착해서 마지막 남편이 들어오고 기념메달을 받는 것을 촬영할 수 있었다.
한 번도 장거리를 뛰어보지 않은 남편이 다치지 않고 마라톤을 마칠 수 있어서 너무나 감사했다. 이로써 오늘의 모든 일정을 마쳤다. 비록 남편이 늦게 들어와서 애프터파티는 다 끝나버렸었지만, 그래도 늦게 들어오는 사람들 무리 안에서 같은 싸움을 끝낸 전우애 같은 게 느껴졌다. 나 같은 스펙테이터들이 약 3번 정도 응원 스폿을 이동한다는데, 나는 이 날 6번 응원을 했다. 나는 그날 총 3만 2 천보를 걸었다. 남편은 6만 1 천보를 걸었다.
나중에 남편과 이야기해 보니 자기가 이 마라톤을 완주할 거라고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런데 나는 반대로 남편이 이 마라톤을 완주할 수 있을 거라고 막연하게 생각했다. 그리고 남편은 그것을 해냈다.
이 위대한 도전을 함께 할 수 있어서 정말 영광이었고,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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