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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원래대로라면 오자크 얘기를 더 빨리 했어야 했다. 그런데 왜 이렇게 늦게 글을 쓰는 건가 하면, 사실 이 시리즈가 나에게 너무 큰 의미라서 도대체 어디서부터 어떻게 얘기해야 하는건지 그걸 감당하기가 너무 벅찼기 때문 이었다. 그렇다고 아예 기록을 남기지 않고 계속 외면 하다가는 정말 영영 기회가 없을 것 같아서 그냥 생각나는 대로 의식의 흐름에 맡겨 글을 써보고자 한다.
넷플릭스에 정말 여러가지 훌륭한 쇼가 많지만, 단언컨대 그 중 최고는 오자크라고 생각한다. 이 티비 쇼를 안 본 사람이 없게 해주세요 🙏 라고 빌 수 있으면 빌고 싶을 정도이다. 그만큼 정말 스토리, 구성, 등장인물, 심지어 화면 보정 색 까지 완벽한 드라마라고 말하고 싶다.
이 시리즈가 재미있는 가장 큰 이유는 도무지 스토리 예측이 안된다는 점이다. 워낙 매 시즌마다 답답이 최소 1명, 미친놈 최소 1명씩이 등장하기 때문에 그들이 어떻게 스토리를 예측 불가능한 방향으로 틀어버리는지 보는 재미가 굉장히 컸다.
애초에 시작부터 버드 가족이 하는 일 자체가 불법이기 때문에 도덕적인 측면에서 그들이 하는 행동을 옹호할 수 없다는 것을 너무 잘 안다. 하지만 스토리를 따라가다 보면 계속 그 사람들이 잘 됐으면 좋겠고, 그렇다고 너무 선은 넘지는 말았으면 좋겠고, 또 버드가족이 위험에 처해서 죽으면 안된다는 생각을 계속 하면서 보게 된다.
처음엔 그냥 멕시코 카르텔의 돈세탁을 해주는 것이었는데, 웬디는 그 와중에도 다른 방식으로 자신의 꿈을 실현하기를 바라고, 거기에 가스라이팅(?)된 마티는 또 하필 그럴 능력이 되는 사람이라서 웬디를 만족시키면서도 멕시코 카르텔의 손아귀를 결국 빠져나가지 못하고 계속 더 들어가게 된다. 이 과정에서 버드 가족은 아이들과 큰 불화를 일으키게 되는데 이것이 또 하나의 관전포인트이다.
생각치도 못한 등장인물들이 상상하지 못했던 때에 죽어 나가는 것도 이 시리즈의 굉장히 큰 매력이 아닐까 싶다. 시즌 1, 2, 3 차례대로 긴장감을 차근차근 쌓아 나가는데, 특히나 시즌 3 정도 되면 시청자들은 이제 이 쇼에 적응할 만 하기도 한데, 마지막 화에서 또 제대로 시청자들을 놀라게 하면서 마지막 시즌인 4를 엄청나게 기다리게 했다.
그렇게 큰 기대를 안고 시작된 마지막 시즌인 시즌 4의 하비는 사실 다른 빌런들에 비하면 매력도 많이 떨어지고 그저 기분나쁘게 나쁘기만 한 캐릭터라 정감이 가지 않았다. 하비는 죽기 전 까지 어설프게 미친놈 흉내를 내는데 전 편들의 미친놈들에 비하면 사실상 좀 약한 정도이다.
아무래도 어느 시리즈던지 그렇겠지만 이렇게 이야기가 몇 년을 걸쳐서 나오게 되면 마무리 할 때 쯤에는 그 시리즈가 쌓아온 명성을 유지하면서 시청자들이 어느정도 만족하는 결말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오히려 이야기가 좀 늘어지거나 피로도가 쌓이게 되는 부분이 없지 않아 있다고 생각을 한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그런 점을 감안하더라도 시즌 4의 결말은 괜찮았다. 아니, 사실 어떤 결말이 왔었어도 모든 시청자들이 만족할 수는 없을 거라고 생각을 한다. 그런 의미에서도 시즌 4의 결말, 즉 모든 오자크 시리즈의 결말은 썩 괜찮은 편이 아니었나 싶다.
결국 마티는 그 가족들을 탈출 시킬 수 있는 몇 번의 기회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지 않았다는 것, 그리고 그 이유는 마티 혹은 웬디의 탐욕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결말이 충격적인 것은 결국 웬디가 탐욕으로 일그러져 모든 것을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끌고 가는 걸 정말로 싫어했던 아들 조나가 막판에 멜을 쏘는 듯한 엔딩으로 끝났다는 점이다. 할아버지를 따라 다시 평범한(?) 삶을 어느정도 찾을 수 있었던 아이들도 결국에는 그냥 주니어 마티, 주니어 웬디가 되어가는 걸 막을 순 없었나보다.
샬럿
나는 시즌 초반 샬럿을 정말 극혐했다. 멍청하고 일도 제대로 못하는 캐릭터라 생각해서 매 순간 답답했다. 그런데 사실 샬럿은 여느 다른 십대 아이들과 하나도 다르지 않은 정말 평범한 아이였다. 동생 조나가 워낙 똑똑하고, 아직 청소년기가 되지 않아서 부모님 말을 잘 들어 아이임에도 불구하고 맡은 바 임무를 잘 완수하는 것이었는데, 오히려 평범한 소녀인 샬럿이 조나 곁에 있다 보니 바보 같고, 모든 계획을 망치려만 하고, 낄 데 안낄 데 구분 못하는 어노잉한 캐릭터로 비춰졌던 것이다. 그녀에 대한 분노(?) 가 사그라든 것도 사실은 그녀가 시즌 후반에 달하면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어른이 되어가면서 어느정도 집안 사업(?) 에 적응하고 자기 몫을 하는 것을 본 이후였다. 그런 모습을 보다 보니 나의 내면에서 오히려 과거의 그녀가 이해가 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있었다.
헬렌
제일 매력적인 캐릭터로 헬렌을 빼놓을 수가 없다. 정말 똑똑하기도 하고 너무 냉정하기도 하고, 철두철미한 그녀는 딸이 왔을때 조차 사실은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너무 아무렇지 않게 벤을 죽이는 모습도 인상깊었는데, 그도 그럴 것이 사실상 스토리를 따라가는 시청자의 입장에서도 그 당시에 벤을 죽이는 것이 어쩔 수 없는 최선의 선택이라 믿을 정도였으니까. 정말 지독한 악역 캐릭터이지만 죽는 순간까지도 극의 긴장감을 위해서 너무나도 필요했던 최고의 캐릭터라고 생각한다.
달린
스넬 가문의 가장 또라이인 달린 캐릭터를 꼭 짚고 넘어가야 한다. 이 미친 할머니는 정말 모두의 예상을 뛰어넘는 찐 또라이인데, 그렇기 때문에 또 쇼를 계속되게 하는 큰 공을 세운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달린이 너무나도 미쳤었기 때문에 사실 이정도를 뛰어넘는 인물을 찾기는 어려울 정도이다. 그녀를 화나게 하면 앞 뒤 볼 것도 없이 무조건 총들고 와서 갈겨버리는데, 이러한 달린의 의외성 때문에 돌이켜보면 시즌 초반이 즐거웠다. 그런 무모한 면이 있는 반면에 목사부부의 아들인 지크를 또 지극정성 키우는 것도 참 의외라고 할 수 있다. 마지막에 가서는 랭모어 가문의 둘째 애기인 와이엇이랑 세대차를 넘어 찐한 사랑을 하는데 이것조차 그녀이기 때문에 가능한 게 아닐까 싶다.
루스
이런 혼돈의 카오스 같은 상황에서 사실 시청자 모두의 사랑을 받은 캐릭터는 바로 루스이다. 정말 미워할 수 없는 캐릭터이다. 시골 촌구석에서 마을 사람들이 모두 손가락질하고 하찮게 여기는 레드넥 가문 랭모어. 집은 다 찌그러져가는 트레일러이고, 가족들 중에 존경할 만한 인물은 하나도 없고, 그런 열악한 환경에서도 가장 성공했던 캐릭터이다. 처음에는 단지 동네 양아치 정도의 캐릭터였는데, 사실 교과서에 나올 정도로 완벽한 롤모델이라 할 수는 없지만 루스가 만난 사람들 중에서 가장 똑똑하고 루스를 나름 챙겼던 마티를 만나면서 루스는 많은 발전을 하게 된다. 둘의 합은 언제나 좋았던 것 같다. 비즈니스가 틀어지고 서로를 적으로 몰아야 할 상황도 많았지만, 그럼에도 마티와 루스는 서로를 챙기고 어떤 사제관계 비슷한 그런 동지애가 계속 되었다고 생각한다. 굿바이 오자크에서도 그렇듯 모든 스토리가 루스를 죽이는 쪽으로 가고 있었고, 그것은 누가 봐도 되게 필연적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아무도 그걸 원하지는 않았겠지만... 어쩌면 너무 진부하게 그녀가 죽어버린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녀가 제대로 잘 사는 모습을 한번쯤 보고 싶었던건 모두 마찬가지일 것이다.
루스 랭모어를 연기한 줄리아 가너는 오자크에서 정말 인생캐를 만났다. 루스 자체가 말을 되게 험악하게 톡 쏘아붙이는데, 그런 점을 정말 잘 살려서 찰지게 연기했고, 상도 많이 받았다. 이로써 오자크 시리즈는 끝났지만 앞으로도 좋은 배역을 만난다면 큰 배우가 되지 않을까 싶다.
버드 부부
버드 부부를 대체 뭐라고 말할 수 있을까? 일단 배우들 자체가 연기가 보장되어 있는 것을 넘어서서 그냥 버드 부부 그 자체였다고 생각한다. 마티 역의 제이슨 베이트먼은 사실 내 기억에는 코미디 영화나 쇼에 많이 나와서 이런 정극에서 그를 보는것 자체가 신선했다. 그런데 그건 그냥 내가 그를 잘 몰라서 그런거였다. 제이슨 베이트먼은 그 자체로 마티였다고 생각한다. 똑똑하고 약간은 소심하고 그런데 할일을 시키면 기가막히게 해내는 그는 당연히 카르텔이 선택할만한 인재이고, 어쩌면 당연하게도(?) 죽지 않고 끝까지 살아남아 일을 할 만한 인물이다. 이런 어려운 인물을 제대로 연기해내고, 감독까지 할 수 있다는 것은 큰 재능이다.
웬디 역의 로라 리니. 역시 대배우이다. 우리나라에서 크게 성공한 영화 중 트루먼 쇼, 그리고 러브 액추얼리에서 모습을 보인 배우이다. 나도 당연히 로라 리니에 대해서 그정도의 필모로 그녀를 알고 있었고, 거기에서 더 나아가 이번 쇼에서 그녀는 지금까지 이뤄온 것에서 더 큰 쐐기를 박아버렸다. 웬디 역을 돌아보면 그녀는 평범한 아내, 권태로운 아내, 남편이랑 그냥 저냥 불만족스럽지만 이혼할 정도는 아니게 지내는 아내이다. 그런 그녀는 사실 극 초반에서 부터 그녀의 야망을 조금씩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그저 가정주부였던 그녀가 부동산에 첫 직업을 구했을 때를 새삼 돌이켜보게 된다. 정치계에 발을 들여놓고 결국 거물이 될 정도로 언변이 뛰어난 그녀가 어떻게 보면 대단하고 부럽다. 비뚤어진 그녀의 야망을 볼 수 있어서 너무 좋았고, 시즌마다 드러나는 그녀의 가족사를 가미한 스토리 전개도 대단히 좋았다.
과연 버드 가문이 극중에 나왔던 것 처럼 케네디 가문의 발 밑이라도 따라갈까 싶지만, 시즌이 끝나버려서 우리는 알 수 없다. 아마 그럴 수 도 있지 않을까.
마지막에 신부님은 그들에게 경고하고, 심지어 차가 뒤집혀 온가족이 교통사고를 당하는 장면이 나왔지만, 그들은 병원조차 가지 않는다. 대체 아직도 그 장면들이 뭘 말하고자 하는건지 온갖 추측이 난무하지만 이제 그들을 보내줄 때가 온 것 같다. 선과 악의 경계를 어쩔 수 없이 넘나드는 인간의 고뇌를 보는 것은 재미있지만, 그저 악밖에 남지 않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는 것은 별로 재미가 없기 때문이다.
나중에 어느정도 시간이 지난 뒤에 모든 시즌을 몰아보며 다시 그 감정들을 느낄 때가 오면 좋겠다. 그리고 네브라스카를 떠나기 전 레이크 오자크로 휴가를 떠나는 것도 꼭 고려해 보아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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