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프 자런의 '랩걸'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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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지구화학자이자 지구생물학자인 호프 자런의 에세이인 랩 걸을 읽었다. 인문학도인 나에게 과학자들의 이야기는 언제나 흥미롭다. 게다가 미국 미네소타에서 나고 자라 박사과정을 거쳐 교수로 활동하는 그녀의 이야기는 미네소타와 멀지 않은 곳에서 박사과정을 하는 배우자를 둔 나에게 지리적으로, 직업적으로 간접적인 공감대를 형성하게 했다.
 
책은 크게 두 가지 주제를 번갈아가면서 이야기한다. 그녀가 어떻게 이 길로 들어서서 지금까지 걸어왔는지를 서술한 그녀의 개인적인 인생사와, 일반인들이 알기 어려운 그녀가 연구하는 다양하고 흥미로운 식물들에 관한 이야기가 그것이다.
 
아주 어릴 적부터 아버지의 실험실에 따라가기 좋아하던 소녀가, 본인의 정해진 미래로만 보였던 미네소타의 다른 이들이 살아가는 방식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길을 개척하는 모습을 보면서, 본인이 열정을 보이는 일에 주체성을 갖고 평범한 주변의 사람들과 달라질 미래의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면서 도전을 계속하는 모습이 굉장히 인상깊었다.
 
그녀가 박사과정 이야기를 서술한 부분에서 나는 자연스럽게 남편을 떠올렸다. 버클리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그녀는 성공적으로 조지아텍에 첫 번째 직장을 잡게 된다. 게다가 그녀의 실험실 인생의 동반자인 빌을 자신의 랩으로 함께 데려가게 된다.
 
빌과 그녀의 인연은 이 책의 여러 소주제 중 하나를 담당한다. 호프와 빌은 연인도 아니고 직계 가족도 아니지만, 세상 누구보다도 가깝다. 연구에서부터 개인적인 이야기까지 모두 털어놓을 수 있는, 그러면서도 연인의 감정보다는 형제의 감정을 나눌 수 있는 그런 사이의 사람을 만나는 것은 어쩌면 평생의 사랑을 만나는 일 보다도 더욱 어려운 일 같다. 빌은 그녀의 실험실에서 일하며, 그녀가 다른 학교로 부임할 때마다 함께 자리를 옮긴다. 박사생 시절부터 하와이로 이주하기까지, 빌은 그녀의 아주 소중한 연구 동료이자 또 다른 가족이다.
 
또 다른 소주제 중 하나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난 여성이 과학자가 되기까지 겪었던 부당함과 고충에 관한 이야기이다. 지금에야 사회에서 많은 노력들이 있었고, 개선된 부분들도 많지만, 1969년생인 그녀가 지금의 자리에 오기까지 많은 도전들이 있었다. 의대 진학을 꿈꾸며 병동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소녀가 자신의 꿈을 펼쳐 영향력 있는 교수가 되기까지 겪었던 수많은 도전과 좌절과 성공의 순간에 대한 묘사는 독자인 나에게 잔잔하지만 지속적인 만족감을 주었다.
 
나는 책 중반까지도 그녀가 전통적인 가족을 이루지 않을 것이라고 지레 짐작했다. 아마 이것은 독자뿐만 아니라 당시의 그녀도 예상했던 일일 것 같다. 그러나 그녀는 같은 과학자인 클린트를 만나 사랑에 빠지고, 노르웨이에서 결혼한다. 그 후 찰스라는 아들을 낳게 된다. 그녀의 결혼과 출산에 대한 이야기는 책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지는 않지만, 과학자이면서 결혼과 출산을 경험하는 사람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 (번외로 빌도 결혼해서 하와이에 살고있다고 한다.) 
 
그녀가 학자로서, 작가로서 지금도 왕성하게 활동을 하고 있기에 그녀가 출판한 다른 책들도 읽어보고 싶다. 그녀와 그녀의 책 소개가 담겨있는 페이지의 링크를 남겨두려고 한다.
https://www.penguinrandomhouse.com/authors/2111914/hope-jahren/ 

Hope Jahren | Penguin Random Hou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