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룰루 밀러의 책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내가 크레마 모티프를 구매하고 읽게 된 첫 책이다. 밀리의 서재를 통해서 읽었다. 전자책을 사용하고 처음 읽는 책이었는데, 영어 원서가 아닌 한국어로 된 책을 읽어서 그런가 눈의 피로도 없었고, 책 읽는 데에 전자책이 어떠한 방해를 한다고 느꼈던 점도 없었다. 한마디로 술술 빠져들어 읽었던 책이다.
난 이 책에 대한 어떠한 정보도 없이 시작을 했다. 원래 영화던 책이든 간에 스포일러 당하는 걸 제일 싫어해서 무작정 뛰어들어 본다음에 나중에 관련 정보를 찾아보는 것을 좋아한다. 이 책도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나는 이 책이 소설인지, 에세이인지 그 장르조차 모르고 시작을 했다.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삶을 좇는 화자는 그의 어릴 적부터 삶이 다하는 날까지 그의 삶에 대한 흔적을 찾아다니고, 중간중간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 조던의 청년 시절 그의 삶은 범상치 않았고, 심리적으로 불안정한 화자가 그의 삶을 들여다보면서 자신이 얻을 만한 것을 찾아나간다. 그래서 화자를 따라가던 나는 책 중반까지도 이것은 소설일까 하고 생각했다.
내가 이 책이 에세이라는 것을 눈치챈 것은 나중의 이야기이다. 스탠퍼드 부부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을 때도 "에이 설마, 하지만 흥미로우니 나중에 사실관계를 찾아봐야겠어."라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는데, 소설이라고 굳게 믿었던 이 책은 점차 나에게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무시무시한 역사적 사실들에 대해서 수많은 증거들을 들이밀었다.
조던의 멋진 삶의 명성에 작가가 (혹은 내가) 실망한 건 아마도 스탠퍼드 부인이 암살당했을 때부터였을 것일까? 낙관적이고 희망적이고 힘든 일도 툭툭 털어버리고 본인의 일을 지속하는 성격의 멋진 학자 - 이러한 성격이 문제였을까? 샌프란시스코의 대지진도 막아내지 못한 그 연구에 대한 열정은 놀랍게도 본받고 싶은 것이었지만, 그가 가진 모든 장점을 상쇄할 만큼 커다란 그의 문제점은 본인이 주장하는 이론이 타인에게 얼마나 큰 피해를 입히는지 절대로 모르는 것이었다.
후반부에 다다르고 화자가 애나와 메리를 인터뷰했을 때 내가 대체 무슨 이야기를 읽은 건지 큰 충격을 받았다. 분명 그녀의 말처럼 내가 미국 대학에서 들었던 미국 역사 수업에서 그런 내용은 다루지 않았다. 미국에서 초중고를 나온 남편에게도 학창 시절 이런 내용에 대해 배운 적이 있느냐 물었고 남편 또한 처음 듣는 내용이라고 했다. 그러나 우리가 배우지 않았을 뿐 미국에서 일어났던 끔찍한 일들은 역사적으로 실존했던 일들이었다.
어류는 존재하지 않는다. 어류 연구를 평생의 업으로 삼은 사람에게 이보다 큰 충격을 줄 수 있는 문장이 어디 있으랴. 하지만 그전에 생을 마감한 조던에게 그것이 그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알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조던의 악행에 대해서는 명백히 그의 잘못이라 말할 수 있지만, 연구를 하는 자세라던가 그의 특이한 성격이라던가 어류는 존재한다는 가설이라던가 등등 책에 나왔던 많은 부분들에 대해서 그의 모든 삶이 통째로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내가 이렇게 생각하게 된 계기는 남편에게 데이비드 스타 조던의 악행에 대해 길길이 뛰며 설명을 한 뒤 책의 일정 부분만 나의 입을 통해 전달받은 남편이 그의 연구에 관련된 이야기에 대해서 본인의 현재까지의 연구 인생과 경험을 바탕으로 그에 대해 중얼거리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 그럼에도 그냥 조던은 나쁜 거임! 아무튼 그럼!!" 하고 책을 읽지 않은 사람의 반응에 확 열이 오르기도 했는데, 또 나중에 생각해 보니 어쨌든 책을 읽으며 나도 초반에 그에 대해서 설명한 문장들을 메모하며 나에게 도움이 될 거리를 모으기도 했었다는 걸 부정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이 책이 복합적인 이야기를 전달해 나가기 때문인지, 나도 책의 각 부분을 떼어다가 조금씩 조금씩 생각해보곤 한다. 책의 큰 뼈대가 되는 조던의 삶, 그리고 밀러의 삶, 간혹 총을 생각한다는 그녀 - 점차 줄어들고는 있다지만! - 그리고 인스타그램을 팔로우하며 보게 된 그녀와 그녀 아내와 부부의 두 아들들. 언어가 정의 내리는 것과 그것에 대한 폭력성과 간편성. 그리고 나는? 나는 미국에서 잘 살아갈 수 있을까? 그 민들레 법칙이나 그물망처럼 촘촘히 메꿔져서 살아가는 인간관계 같은 개념에 있어서 미국사람들이 나를 받아줄까? 이 책을 읽고 이 땅에 사는 것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 같은 게 며칠간 있었다. 또 한편으로는 이렇게 과학적 이야기를 다루다가 결국에는 인류, 그리고 인문학과 연결되는 이 학문적 순환(?)에 마음이 엄청 부풀어 오르기도 했다.
이 책을 만약 원서로 읽었다면 내가 느낀 여러 가지 생각들이나 감동이 제대로 오지 않았을 것 같다. 영어를 잘해서 한국어 번역에 아쉬움을 느끼는 사람들도 더러 있지만 나는 그만큼 영어를 잘하진 않아서 한국어로 이 책을 읽어서 정말 다행이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요즘 크레마 모티프 덕분에 한국어 책들을 많이 읽고 있는데, 이 책을 가장 먼저 완독 할 수 있었다는 것이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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