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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가 있습니다.
https://www.netflix.com/title/81166770
드디어 조용한 희망을 다 보았다. 이 드라마를 완결하기까지 나는 꽤나 버거웠다.
오징어게임은 다음편! 다음편! 을 외치면서 이틀만에 주파해버리고, 남편이 못 본 부분을 다시 보느라 재탕도 뛰었는데,
비슷한 시기에 시작했던 조용한 희망은 가끔은 한 회도 제대로 못 보고 잠시 멈췄다가 숨을 고르고, 다시 재생 버튼을 누르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던 적도 있다.
영어 제목은 Maid 인데 아무래도 House keeper도 아닌 Maid 가 주는 단어 어감과 "하녀"라는 우리나라의 영화가 주는 느낌이 꽤나 쎄기 때문에 조용한 희망이라는 전혀 다른 제목을 붙여버린게 아닌가 싶다. 그러나 조용한 희망이라는 제목은 Maid라는 직설적인 제목이 주는 것 보다 내용을 더욱 잘 담고 있기도 하고, "희망" 이라는 단어가 주는 따사로움이 좋았다.
배경은 시애틀 근처의 피셔 아일랜드이다. 워싱턴주 특유의 축축하고 때로는 톤다운된 우중충함, 혹은 신비롭기도 한 그 색감이 좋았다. 어떨때는 사람을 더욱 무기력하게 만들지만, 또 새벽의 푸르름 같은 느낌이 주는 잔잔한 기분좋음이 생각나기도 하는 딱 워싱턴 스러운 느낌 말이다. 그러나 실제 촬영지는 캐나다 Victoria, British Columbia 라는게 함정. 뭔가 워싱턴 윗쪽 캐나다는 더욱 그런 분위기인가 싶기도 하다.
회차가 거듭될수록 나는 알렉스와 그녀의 주변 인물들에 대하여 알게 되었다. 극 초반에 그녀는 자신이 처한 상황이 무엇인지 제대로 인지하지도 못한다. 다만 남자친구인 숀의 행동에 두려움을 느꼈고, 탈출해야겠다고 생각한다. 스스로 아이를 양육하고 독립하여 살아가야겠다고 큰 마음을 먹고 도움을 요청하러 SSA 같은 사무실을 방문할때도, 쉼터에 갈 때도, 매디 때문에 법정에 갔을때도 그녀는 자기가 어떤 일을 겪고 있는지, 어떤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지 너무도 모른다.
나는 대다수의 어떤 형태로든간의 폭력을 경험하는 여성들이 알렉스와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항상 이야기하지만 그것을 끊을 수 있는 고리는 바로 교육 뿐이다. 가끔 내가 하는 공부를 내가 왜 처음에 하겠다고 했던건지 그 이유를 잊어버릴 때가 있었는데, 마지막 크레딧을 보고 다시 그 이유가 생각났다.
알렉스는 항상 돈에 쪼들리고, 잘 해 보려고 하는 일들은 다 꼬여버린다. 많은 청춘들의 모습이 알렉스에게 투영되었다.
잠깐 다른얘기.. 미국에서는 특히나 젊은 엄마들이 많다. 한국에서는 젊은 나이에 엄마가 되는 비율이 그리 높지 않은데, 이곳은 다르다. 미혼모도 많고 결혼 안하고 애기만 낳은 커플들도 많다. 그리고 피부로 느끼기에도 어린아이들에 대한 복지가 한국보다 나쁘다. 그래서 나처럼 이민오신 분들이 초등 들어가기 전까지는 한국에서 아이 키우는게 더 좋다는 말을 많이들 하신다.
알렉스를 보았을 때 나는 또 덜컥 겁이 났다. 그래서 자꾸만 영상을 못보고 한참 숨고르기를 해야했다. 내가 영화 "프란시스 하" 를 보았을 때, 그리고 "노매드랜드"를 보았을 때와 비슷한 감정을 느꼈다.
이건 주로 내가 미국에 온 뒤로 크게 느끼는 것인데, 힘들게 사는 사람들을 보면 나도 잘못하면 저렇게 될 수 있다는 불안감이 엄습해온다. 그리고 알렉스는 내가 아는 사람도 아니지만은, 주변 미국사람들에게 그녀와 비슷한 처지의 사람을 찾으라 하면 어렵지 않게 그런 사람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아서 더 그렇게 느끼는 것 같다. 실제로 이 이야기는 실화를 바탕으로 쓴 이야기이기도 하고.
그렇다보니 한국에서 외화를 볼 때면 "응 그냥 미국 이야기~" 하고 대수롭지 않게 보던 이야기들이, 이제는 "내 이웃의 이야기"가 되어버리니 편하게 이야기를 볼 수 없게 되어버렸다.
다시 돌아가 알렉스의 부모에 대해 이야기 하고 싶다.
알렉스의 엄마는 드라마를 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제정신이 아니다. 오히려 아빠가 너무 멀쩡한 사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알렉스는 아빠를 멀리하고 그런 미치광이 엄마를 챙긴다. 도대체 왜일까 이해가 가지 않았던 때도 있었다.
그러나 이야기를 끝까지 보다보니 왜 알렉스가 그래야만 했는지 알 수 있었다.
엄마는 가정폭력에서 탈출하기 위해 알렉스가 아주 어릴 때 그녀를 데리고 도망쳤다. 너무 어렸을 때 일이라 알렉스조차 잊고 지냈던 기억들. 그것만 빼고 아빠는 좋은 사람이다. 그러나 알렉스조차 숀에게 가정폭력을 당했기 때문에 아빠를 제대로 마주하기 어렵다. 마지막까지 아빠는 숀의 편을 들어주었다.
그러나 알렉스의 엄마가 좋은 사람이라고 말하는 것도 어렵다. 한국에서 언제부터인가 많이 쓰였던 단어인 "K-장녀". 알렉스는 "U-장녀" 라고 해야할까? 그녀는 6살때부터 엄마를 챙겨야했다. 엄마는 계속 정착하지 못하고 여러 연애를 했고, 집을 팔고 캠핑카에서 살았고, 나중에는 노숙도 마다하지 않았다. 또 다른 남자와 다른 사랑을 하고, 정말 정신병이 생겨버리기도 했다.
나는 알렉스가 안쓰러웠다. 몬태나에 엄마와 같이 가자고 했을때도 사실 반갑지 않았다. 나는 그녀의 엄마가 언제나처럼 말한것을 번복하며 몬태나에 같이 가지 않겠다고 했을 때 비로소 안도했다. (놀라운 것은 이 극중 모녀가 실제로도 모녀사이라는 것이다. 엄마의 피를 물려받아 딸도 연기를 잘한다.)
이 여정은 길고도 멀었고, 중간에 몇 번이나 그러지 못하고 과거로 돌아가 예전처럼 살아갈 뻔 했다. 남에게 돈을 꿔야하고, 더러운 집을 매 번 치워야했고, 돈도 제대로 못받아서 별의 별 고생을 다 할 정도로 아주 구질구질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알렉스는 조금씩이라도 삶의 나은 방향으로 매디와 나아갔다.
그녀는 매디와 몬태나로 떠나 대학에도 가고 비로소 제대로 된 삶을 살아갈 것이다. 그녀가 바란 최고로 행복한 날은 정말 그녀의 상상대로였을 것이다.
중간중간 감독의 연출이 너무 좋았다. 알렉스가 생각하는 숀과 네이트의 차이라던지, 법정에서 판사와 변호사가 하는 말을 못알아들어 "legal legal legal.."로 들린 설정이라던가, 틴더남과의 어플에서의 대화라던지, 우울의 구렁텅이에 빠져 희미하게 들리는 소리라던지, 어마어마한 유니콘들에 둘러쌓여 자신의 글을 읽는 알렉스의 모습 등 재미난 연출들이 드라마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줬다.
조용한 희망. 이 이야기를 보고 작은 동기부여를 받은 몇몇의 사람들을 보았다. 그리고 나도 아주 작은 용기를 가지고 하루를 살아가야겠다는 희망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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